8월 휴가 다녀오다(8.15~8.18)

그전부터 휴가라는 말을 써보고 싶었다.
그냥 여행하면 고생이 조금될 것 같고  휴가하면 고생보다는 휴식, 즐긴다.. 이런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끝나기 며칠전부터 딸래미가 이번 여름 휴가를 남해~서해 쪽으로 가자고 했다.
근사한 팬션에서 숯불 바베큐도 해먹자고 했다. 부랴부랴 며칠동안 남해쪽 팬션을 찾아봤지만 
휴가시즌이라 예약이 모두 된 상태였다. 겨우 연락이 닿은 것이 거제도 망치콘도 월요일 저녁
1층 침대방 1칸 12만원짜리가 남아 있었다.
  일단 계획으로는 8월 15일 3시 오페라 리골렛토 감상 후 대구에서 숙식-8월 16일 경주 캘리포니아비치에서 1일-대구 숙박 또는 경주 1박 (부모님 함께)-8월17일 거제도 1박-18일(월) 귀가 정도로 예상했는데
  김G가 경주월드 캘리포니아비치 가기 싫다는 바람에 하루를 앞당겨 16일 아침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어쨋든 나로서는 부모님과 함께 할 작은 기회마저 애들 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일까?
추석 지나고 부모님 모시고 따로 한번 시간을 내어 포항쪽을 한번 다녀와야 겠다.



by 수도산 | 2008/08/19 11:34 | 세상 나들이 | 트랙백 | 덧글(0)

김지영 글 - 문경새재를 달구다

5월이라 신나게 피어대는 봄꽃을 느끼기도 전에 주마간산(走馬看山)과 같이 시간은 지나가버렸고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우리들의 체육대회는 시작되었다. 우리들의 축제 장소는 문경새재였고 그 곳의 아름다움에, 푸른 나이인 우리조차 초록을 탐낼 것만 같은 기분 또한 드는 곳이었다. 첫 회를 맞는 환경 체육대회란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새재는 우리의 손길이 전혀 필요치 않을 정도로 맑고 깨끗하여 우리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봄날. 즐거운 소풍의 아침과 함께 우리의 깃발이 흩날렸다. 문경새재의 공연장 앞, 칠판과도 같이 새파란 잔디밭엔 색색의 밑줄이 그어져 있었고 나도 초록색의 하나가 되었다. 아직 봄의 계절이거늘 내리쬐는 뙤약볕은 우리의 열정을 시기하는 듯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체육대회는 교장 선생님의 개회사로 시작하였고 첫 순서는 긴줄 넘기, 고무신 던지기였다. 색색의 친구들이 줄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경기가 이루어질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체육에는 소질이 없었던 나인지라 우리 반 대표 선수들에게 진심의 응원으로 그 뜨거움을 전하는 것으로 출전을 대신하였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함성소리와 응원소리에 행여 내 목소리가 묻혀버릴까 그 소리에 더 큰 소리를 입혔다. 줄넘기 줄을 한 번 한 번 넘을 때마다 긴장의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친구들과 날아가는 고무신을 바라보며 땀을 쥐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협동의 의미와 체육대회의 재미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태양아래에서도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주었고 그에 값하는, 종목 1위라는 영광을 거머쥐게 되었다. 아직 점수판의 하나를 채운 것뿐이었지만 이미 승리의 운을 입은 듯 했다. 이 등등한 기세가 하루 종일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렇게 공연장 앞의 순서를 마무르고 이번 체육대회의 타이틀 경기인 걷기 대회가 시작되었다. 한 걸음씩 발자국을 찍으며 점점 앞으로 앞으로 향했다. 가벼운 시작이었다. 공연장의 큰 무대가 병풍 같은 산에 둘러싸여 자연의 더 큰 무대를 이루었다면 대회의 처음을 축하해준 제 1관문은 우리 민족의 역사의 무대였고 우린 오늘 하루만큼은 그 두 무대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제 1관문은 성벽을 쌓았다 라기 보단 짰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듯 했다. 가로의 씨실과 세로의 날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비단을 짜놓듯 서로 완전히 다른 모양의 돌들이 빈틈없이 꽉 짜여져 있었다. 또한 그 모습은 서로 다른 성격과 모양의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과도 닮은듯했고 평소에 보던 벽돌과 모르터의 관계에서와는 다른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의 관문도 세상을 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관문 아래를 날씬하게 통과하고 나니 초록의 자연이 잔잔히 펼쳐져 있었고 가히 건곤일색(乾坤一色)의 푸르름으로 하늘과 땅의 구분은 불가능 한듯 보였다. 하늘에 닿고 싶은 듯 위로 위로 쭉쭉 뻗은 나무는 땅 위에서 일어나는 일엔 관심이 없는 듯 오직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높은 나무가 쓰러지지 않고 서있는 걸 보니 보이지 않는 뿌리는 어머니 땅을 하늘보다 더 깊은 애정으로 감싸안고 있을 성 싶었다.
우리가 걷고 있던 이 길도 맨발로 걷는 사람이 더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로 깨끗했다. 학교에선 시멘트, 길에선 아스팔트, 화장실에선 타일만 밟다가 간만에 흙길을 걸으니 흙낱이 쿠션이 되어 온 몸을 띄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몸 또한 자연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일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새재의 멋진 점은 심심하지 않은 자연의 눈맛에 있었다. 조물주의 디자인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자연의 배치는 멋들어졌다. 잠시라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될 듯 오목조목 모여 있는 자연은 오감의 섬모를 곤두서게 했다. 나무의 행렬이 길어진다 싶으니 이과수나 천지연, 나이아가라 보단 소박한 멋이 있는 작은 폭포가 새재의 아름다움을 더했고, 폭포의 시원함이 식기도 전에 마음의 때죽을 씻어낼 듯 한 계곡물에 눈을 개울 수 있었다. 걷기대회라는 본연을 잊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걸음을 재촉했고 다만 계곡물 소리에 마음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때론 뻗고 때론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 보니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살고 있는 나로써 내 인생도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면 언제나 막혀있지 않고 탁 트인 길이 앞에 놓여 있었으면 하고 속으로 소원해 보기도 했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벌써 반환점을 돌아오는 1학년의 모습이 보였고 지친 마음을 견인불발(堅忍不拔)로써 다잡고 다시 한 번 어깨를 곧추세웠다. 조금만 더 가면 목표했던 곳이 눈앞에 펼쳐질 거란 생각에 초심의 설렘이 다시 다가왔던 것 같다. 하지만 새재의 흙길은 왜 이리 내게 할 말이 많은지 그 길의 문법은 끝이 나지 않으려는 듯 했다.
제 2관문 도착.
아 하는 탄성부터 먼저 내질렀다. 중독성 있는 풀냄새가 한껏 마신 공기와 함께 허파를 가득 채운 탓도 있겠지만 해냈다는 영광이 그보다 먼저 다가와 반가움의 손을 내밀었다. 이제 그 손을 덥석 잡고 도장만 받으면 되었다. 내 팔목과 그에 흐르른 땀이 하나의 상장으로써 도장을 받은 것이다. 기억보다 더 오래 남을 반 친구들과의 사진을 찍고 다시 한 번 새로운 출발을 위해 관문을 나섰다. 이제 절반 아닌 절반을 끝마친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더 수월해서 인지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 빛깔의 농도가 진해진 듯 했다. 계곡물 소리가 귓가에 아련하고 땅에서부터 피어올라오는 땅내음은 내가 걷고 있는 것인지 땅이 내 위를 걷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게 했다. 내려오면서 다시 보는 자연은 오르면서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입체적인 것이었다. 평면의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듯 한 그런 느낌의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곳에 온 듯 한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떨어지던 폭포수가 솟아오르는 분수로 변해버릴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연을 탐미하며 내려오기엔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너무나 촉박했다. 한 시간 반으로 잡혀있어 넉넉하다고 생각되었던 경기시간에서 이제 십 분 가량 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아쉬운 초록빛을 뒤로하고 다시 걷기대회의 분위기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여유로움을 구겨 삼키고 보니 책임감과 사명감에 한가로웠던 발걸음도 빨라졌다. 아슬아슬하게 잔디밭에 다시 돌아오니 머리위로 풀빛이 가득한 아이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반은 단 한명의 누락자도 없이 모두 도착했고 다시 한 번 우승을 향한 작은 숫자가 점수판에 올랐다.
한편 우리가 걷기대회를 하는 동안에 이 아래에선 많은 일이 일어났던지 걷기대회를 마치고 오자마자 보물찾기가 바로 시작되었다. 처음엔 어렸을 때의 보물찾기가 떠올라 유치함을 느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언제나 무엇을 숨기고, 그 숨겨진 것을 찾아내는 것이 보물찾기와 인생의 닮은 점이라 보물찾기는 세대를 막론하고 중독성 강한, 인간의 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관찰력이 모자란 것인지 다른 친구들이 기쁨의 탄성을 연거푸 올릴 때에도 난 보물 비슷한 것도 찾지 못했다. 초록색 껌 종이를 보고 심장이 쿵해서 뛰어가기만을 반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보물찾기를 하면서 작은 풀잎 하나하나나 보도블록 사이사이까지 관찰할 수 있었고 큰 것, 멋진 것만 보려했던 그 전의 나와는 달리 작은 것에서 더욱 소소한 기쁨을 찾을 수 있음을 발견하였고, 그것은 물질적인 보물보다 더 큰 정신적 넥타(nectar)였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씁쓸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어 손에 초록 색종이를 쥔 아이들이 부럽긴 했지만 어쨌든 자전거에서부터 참고서까지 보물을 찾은 친구들 모두모두 축하한다.
아쉬운 보물찾기가 끝난 후 바로 이어진 순서는 환경미화 최고 반 뽑기였다. 오늘의 타이틀이 환경 체육 대회인지라 체육 활동뿐만 아니라 우리 손으로 강산을 아름다움으로 수놓는 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수면위로 보람이라는 작은 꽃송이가 꽃잎을 떨구는 듯했다. 그 수면의 파장이 내면의 정화를 가져온 것일까? 기쁜 마음으로 우리의 버려진 물건을 주울 수 있었던 것 같다. 평소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편도 아니었지만 다른 이의 쓰레기를 줍는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지난날의 나를 반성하고 쓰레기 줍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필요에 의해 만들었고 썼던 것인데 우리의 물건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지 못한 것 같아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다. 가득 찼어야할 비닐봉지가 덜 채워진 채로 아쉬운 시간은 끝났고 네 번째 등수에 머물기는 했으나 그보다도 더 갚진 많은 것을 공짜로 배웠기에 등수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체육대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직 우리에겐 춤 경연이 남아있었고 그동안의 노력을 생각해본다면 당당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서로를 응원했다.
그렇게 대강의 행사가 일단락된 가운데 숲길 옆에 자리를 피고 앉아 시원한 새재의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평소보다 더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다. 매일 사소함과 평범함으로 다가오던 점심이 이곳에선 특별한 행사 같았다. 맛있는 점심이 끝난 후 춤 경연을 위한 마지막 연습을 했고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비장함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굼벵이가 매미로서의 짧은 생을 위해 축축하고 어두운 땅속에서 수년을 살듯 우리는 오늘을 피워내기 위해 봉오리를 키웠고 그간의 추억들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우리 반 주제곡은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에 치어리더 안무로, 천무(天舞) 슬기가 그전에 방송을 통해 감명 깊게 봤던 것을 기초로 했다. 소뇌가 덜 발달하기라도 했는지 머리가 생각하는 거랑 수족이 날 놀아주는 거랑은 달랐다. 하지만 반 친구들과 함께 땀 흘리고 시간을 보내는 것에 즐거웠다. 뭔가를 함께하며 이루어낸다는 느낌은 혼자서 자신의 것을 이루어 낼 때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렇게 하나하나 준비를 해가고 있었지만 그 당시로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이기엔 아직 미흡했던 점도 많았고 호흡 또한 잘 맞지 않아 주말에 모여 한 번 더 맞춰보기로 했다. 빡빡한 수업과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야간 자율 학습으로 피곤했던 우리였고 일주일마다이긴 하지만 너무나 꿀맛 같은 그런 주말을 포기하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토요일 교실에서 있었던 춤 연습에는 반 아이들 대부분이 와주었고 그렇게 우리는 대강의 춤 연습을 끝마쳤다. 그 사이 체육 대회 날을 삼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월요일. 학교에 가보니 기대에 부푼 아이들로 체육대회의 기분을 일찍 느낄 수 있었고 그날 저녁엔 당초 계획에 없었던 춤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난 야간 자율 학습을 하던 중 호출을 받고 교실 쪽으로 갔고, 우리 반은 급식실 앞 신정문 근처에서 연습을 시작하였다. 하나하나가 모두 열심이었고, 힘들어 하는 친구는 다독여가며 그렇게 연습이 중반으로 치닫을 무렵 서은희 선생님께서 응원차, 구경차 오셨다. 선생님의 등장에 우리 반 모두 힘을 얻었는지, 선생님 앞이라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건지 그 동안의 연습 중에 가장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선생님께서 응원을 와주신 것도 고마운데 반 전체에 음료수도 사주셨다. 춤 연습에 몸도 젖고 선생님의 감사함에 마음도 젖는 밤이었다.
전날의 감동이 마음속을 부유하고 있었고 오늘의 무대를 열심히 꾸밀 수 있었던 큰 동기가 되었던 것 같다. 오전 행사도 다 끝나고 이미 오랜 시간 햇빛아래에 서있었던 터라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춤 경연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긴장의 빛과 기대의 빛, 안도의 빛이 피어올랐다. 우리 반의 순서가 초반에 잡혀 있어서 반 아이들의 긴장은 대단했다. 열심히 준비했던 만큼, 딱 그만큼의 긴장이 느껴지는 듯 했다. 몇몇 반의 차례가 지나가고 드디어 우리 반의 순서가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긴장한 빛을 내비치고 싶진 않았지만 숨기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바로 전순서 반의 공연 음악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시간이 얼마 지난 지도 모른 채 곧 우리 반의 등장음악인 멋쟁이 신사가 흘러나왔다. 평소에 하던 연습이랑 실전이 어찌나 다르던지 수족이 또 한 번 일탈을 시도하려는 듯 했다. 그래도 긴장이라는 고무줄이 뒤에서 시위를 당기고 있어서 인지 평소 때 보다 동작도 더 날래지고 숨도 차지 않았다. 모두 날 보고 있는 듯한 느낌 또한 들었다. 무대에 나 혼자 있는 느낌마저 들어 내 둔한 동작에 모두들 웃는 것만 같아 긴장해 실수도 조금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언제 시작했는지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춤이 마무리되고 무대 아래로 내려왔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춤을 춘 것 인지 모르겠다.
평소 체육이나 무용을 잘 하지도 못하고 놀림거리만 되어 왔던 터라 그런 활동 자체를 별로 즐기지는 않았지만 무대에서 하나 되고 그로 인해 끈끈한 무엇인가를 느끼는 순간 개인이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함께한 것 그 자체요, 그로 인해 느꼈던 보람과 행복이라는 깨달음이 날 위로했다. 이렇게 마지막 종목이 끝났다. 이제 편안하게 조금 전의 우리를 겪고 있는 다른 반의 무대를 구경했다. 모두들 열심히 노력한 것이 몸짓 하나하나에서 느껴졌고 감동으로 다가왔다. 재기발랄한 친구들의 무대를 보며 즐거웠지만 오늘이 끝나가고 있음이 느껴져 아쉬움의 농도도 진해져 갔다. 새재의 하늘일까 내 머리위의 하늘일까 조금씩 어두워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햇빛은 그 기세가 누그러졌고 밀짚모자를 벗어, 하늘을 향하는, 내 시선을 가로막던 작은 커튼을 걷어내었다. 장애물이 사라진 하늘이 바로 내 머리위에 있는 듯했다. 손을 뻗어 보았던 것도 같다. 편한 마음으로 있었던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심사와 최종 점수 집계가 있자 다시 긴장의 빛을 내비쳤고 1학년부터 순위 발표가 있었다. 우승한 1학년 반의 기쁜 함성이 오르고 부러움의 물결이 깔렸다. 이제 2학년 차례가 다가왔다. 선생님의 발표가 한 음절 한 음절 머릿속에 와서 꽂혔다.
아 올해 2학년 일등은 우리 2학년 5반이 차지한 것이다. 춤 경연 전까지 전체 2위로 1위 자리까지는 몇 걸음 뒤쳐져 있었지만 놀랍게도 춤 경연에서 만점을 받아 근소한 차이로 1위가 된 것이다. 놀라움이 먼저였고 그다음이 기쁨이었다. 우리 반 친구들에게 고마웠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함께해준 다른 반 친구들을 대표하여 우리 반이 수상하게 된 것에 더없이 감개무량(感慨無量)하다. 나의 승리가 아닌 우리 모두의 승리였으나 난 별로 한 것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부끄러워지고 미안해졌다.
아까까진 보물찾기로 크고 작은 보물을 찾았던 친구들이 부러웠으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기쁨을 준 문경새재에도 감사한다. 우리 고장 문경의 아름다움에 자부심을 느끼고 이런 나를 갖게 해준 학교에도 감사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던가 아름다운 만남이 있으면 아름다운 이별 또한 있는 법. 오늘 하루 문경새재에서의 추억은 3년, 즉 천일간의 소소한 이야기들 중에서도 내게 잊지 못 할 에피소드로 남을 것이고 고등학교 생활을 회상했을 때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문경새재와의 아쉬운 이별은 처음의 아름다움처럼 푸르게 끝났다. 빠르게 빠르게만 외쳤던 내가 느린 자연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보니 다시 빠른 세상 속으로 돌아가기가 싫어지기도 했던 거다.
그렇게 체육대회는 끝이 났지만 우리 반의 열정은 식지 않았고 진심으로 응원해주신 우리의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회식자리로 향했다. 1등 상금으로 받은 12만원이 우리의 왕성한 식욕 앞에서 부족한 금액이었음을 모두 알았고 남은 금액을 부담하신 선생님께 감사함과 죄송함이 교차되었다. 우린 불판을 바라보며 뜨거웠던 잔디밭의 열기를 회상했고 못 다 피운 열정의 꽃을 아쉬워하며 시원한 물과 함께 그 불씨를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언젠가 다시 꺼내게 될 그 날을 위해서.




추억의 꽃송이
상큼한 시작

상큼한 출발




상큼한 무대
상큼한 회식








문경새재를 달구다
-제1회 문경여고 환경 체육 대회











2학년 5반 5번
김지영

by 수도산 | 2008/06/09 23:02 | 넌 뭐하니 | 트랙백 | 덧글(0)

김창 기행문

 

제주도를 다녀와서.......

1607 김 창현


“잘 다녀오겠습니다. 엄마, 4일 후에 봐!” 활기 찬 인사와 함께 나는 아빠 차에 탔다. 드디어 육지를 벗어나는 수학여행이라니! 하! 하! 하!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가는 여행이기도 하고 중간고사를 치고 나서 가는 여행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이번 여행으로 중간고사로 쌓인 피로와 기말고사에 대한 각오를 다져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는데 아... 5시간 동안이나 달렸다. 그 상태로 MP3도 들어보고 PSP로 게임도 해보았지만 5시간은 그리 쉽게 가주지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잠을 청하여 1시간... 2시간을 보내니 드디어!! 항구에 도착하였다. 나는 어렸을 때 작은 배를 타본 것 이후에 배를 타본 적이 없어서 부푼 기대감으로 배에 올랐다. 하지만 역시 선내 숙소는 내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마치 5명이 들어갈 방이 아닌 5명의 짐이 겨우 들어갈 만한.... 더구나 그 엄청난 습기!! 몸에 땀이 나도 절대 마르지 않았다. 아놔.. 그래서 샤워를 두세번을 했다는. 또는 아이들과 이 심적 압박감을 없애기 위해서 카드놀이를 했다는(?)......하! 하!;; 그래도 정 기분이 별로면 갑판에 올라갔는데, 갑판에 올라가면 정말 시원하고 그 배 주위를 감싸고 있는 하얀 아우라(?)!! 정말 멋졌다. 기분이 탁 뚫렸다. “야 너 안 들어가?” 하지만 문제는 새벽 2시였다는 점.... 다시 멍청하게 생긴 슬리퍼가 신겨진 발을 질질 끌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짜증 57.2% 함유된 첫째 밤을 보냈다.

5시 23분. “문창고 학생들! 일어나세요!!” 나는 새벽 2시에 잠에 들기 전 자기최면을 미칠 듯이 걸어놓은 상태라서 깨는 데는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았다. 그냥 뺨따구를 32대 갈기고 7대 더 갈긴 정도?;; 아무튼 3시간 동안 충분히(?) 숙면을 취한 뒤 대충 씻고 대충 양말 신고 대충 뛰다가 넘어졌다. 아... 쪽팔려라... 아이들이 웃네? 쪽 다 팔려서 매진이구나... 나는 임기응변으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어서서 줄을 섰다. 아... 쓸쓸해진다. 여하튼!! 세 종류의 체험 코스로 나눈 후 코스에 따라서 버스를 나누어 탔다. 나는 2번째 체험인 우도 하이킹을 선택했다. 한라산을 가지 않는 이유는 절대 걷기 싫어서가 아니었고, 낚시 체험을 선택 하지 않는 이유는 절대 내가 인내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솔직히 자전거가 편하긴 편해∼∼(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한라산은 왕복 4∼5시간이 걸렸단다.;;)그렇게 또 우도항으로 갔다. 물론 배애르을 타아고∼. 첫날 탔던 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크기였지만 재미있었다. 부우우우우우우우웅∼∼∼. 그렇게 도착을 하니 눈 앞에 펼쳐진 엄청난 x100 광경!! ‘하이킹 천국’, ‘우도 하이킹’, ‘우도 바이크’, ‘XX 바이크’, ‘OO 하이킹’... 좀 짱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조그마한 섬마을에 이런 엄청난 대수의 자전거, 오토바이 그리고 ATV를 가져다 놓았단 말이냐!! 아무튼 자전거 예찬은 그만하고. 그렇게 자전거를 빌린 후 섬의 가장자리를 돌았다. 도로에는 바이크를 타기 쉽도록 바깥 면에 박은 돌들은 사람들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처음에는 시간이 남아돌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가지 볼거리들이 늘어나면서 시간이 지체되고. 지체되고... 그렇게 하다 보니 돌아오라고 한 시간 10분 전이 되었다. 그래서 나와 친구들은 술책으로 가장자리가 아닌 마을 중앙을 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이장님 댁 마당의 고추를 밟을 수 있을 정도의 중심점 이었다고나 할까? 가면서 연평 중, 고등학교를 봤다. 신기하게도 부산, 제주, 우도에서 본 모∼∼든 학교들의 교문은 우리학교보다 예뻤다. 우리학교는 그냥 콘크리트 기둥 3개와 판... 하지만 다른 학교는 엄청난 디자인(마치 미술관 입구를 보는 듯했다.)와 색감.. 최고였다. 우리학교가 미안할 정도로... 그렇게 교문의 美에 감탄하며 미친 속도로 집결지로 달렸다. 어찌나 빨리 달렸던지 돈이 다 없어졌다. 아... 내 3,000원.. 아... 놔... 눈물 나려고 하네.. 그렇게 찜찜한 마음을 이끌고 우리들을 이 곳에 데려다 준 “우도 사랑 1호”를 타고 제주도로 돌아갔다. 음∼∼ 보자... 다음 일정은 “몽골리안 마상쇼”였다. 내가 제 2 체험에서 가장 기대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우선 수준은 한.. C+ 정도 랄까? 아닌가? 너무 많이 줬나? 처음 시작은 흥겨운 몽골 민속춤로 시작했지만 가면 갈수록 마상쇼가 아닌 몽골리안 댄싱쇼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말보다 사람이 많이 나오기 시작하고, 마상쇼보다 춤과 노래가 더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재미도 없었고, 기술 또한 “물구나무 서기”, “내렸다 타기”, “달리는 말에서 뛰어내리기” 등을 하고 또 하고,, 잊어질 만하면 한 번 더 보여줘서 상기 시키는 교육자의 자세!!! 전직 교산가? 최고 였다. 볼 만한 것은 몰골 여자 분들의 얼굴(?). 정말 예뻤는데.. 마치 연예인을 보고 있는 듯한.. 그렇게 “계륵” 같은 쇼를 본 후 웃을 수도, 울 수 도 없었다. 흐흑.. 흐흑.. 쓴 웃음을 지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이 쇼를 보고 난 후 내 머리에는 어서 숙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그때 선생님 가라사대, “이제 숙소로 돌아가겠습니다. 공예단지는 내일로 일정이 미루어졌습니다.” 와우!! 기분이 너무 좋아서 제자리에서 2M 정도를 뛰었다는... 그렇게 15분 정도를 달렸을까? 산 사이로 보이는 “힐”이라는 글자의 건물.. 첫 느낌은 그냥 보통의 건물이었다. 그렇게 숙소 앞에서 향정신성 (술, 담배;;)약물의 소지 여부를 확인한 후 숙소에 들어갔다. 역시 우리의 大문창인은 절대로 그런 청소년적이지 못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두세명 정도는 걸려서 샘한테 맞고 기합 받아야 재미있는데...;;; 하! 하! 다음 내용 Loading..... 우리 방은 맨∼∼ 구석에 있었다. 후훗.. 최고였다. -ㅂ-乃 굳! 비교적으로 선생님의 말걸음이 덜 할 것 같았다는... 그렇게 숙소에 가방을 풀고 숙소를 둘러보니 은근히 좋았다. 으흐∼∼ 아닌가? 나는 선내 숙소보다 좋으면 다 좋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아... 그 악몽 같은 하룻밤... 만약에 그때 졸리지 않았으면 날밤 샜을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여기는 두바이의 7성 호텔 수준이다. 콘센트도 3개나 있고 더블 베드였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숙소의 웅장함에 감탄하고 있을 때 곧 오리엔테이션이 시작하니 빨리 밥을 먹으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끼이익! 철컥! 찰칵! 탁! 탁! 탁! 달그락! 달그락! 철컥! 철컥! 탁! 탁! 탁! (밥 먹고 문 잠그고 레크레이션장으로 달려감..;;) 이상하게도 항상 레크레이션을 할 때면 꼭 팬션 직원 같은 평범하게 생긴 아저씨가 와서 한다. 여자도 아니고 항상 남자가 말이다.. 여자는 이런 직업을 별로 선호하지 않나보다. 그래서 이번 레크레이션은 재미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때 까지 했던 레크레이션보다 재미있었다. 박수도 조금만 치고, 이상한 율동도 안시키고, 비속어도 사용해서 즐거웠다.(좋은 이유도 참...) 그렇게 레크레이션이 끝난 후 노래자랑 순서 였다. 아.. 각 반마다 노래방에서 목청 좀 가다듬었다는 아이들이 나와서 마이크에 음성 신호를 보냈다. 그래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와∼∼ 부러워 죽는 줄 알았다. 아.. 나는 노래를 못 불러서.. 아나.. 슬퍼오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7반의 재섭이가 나와서 촛불 하나는 불렀는데 정말... 못불렀다. 하지만 너무 못불러서 대단한게 아니라 노래를 잘 하지 못하는 데도 앞에 나와서 한 곡조 읊을 수 있는 자신감!!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재섭이가 나오기 전 까지는 ‘뭐.. 나는 노래를 못 불러서 않나가는 건데 뭐..’ 라고 생각하였지만 그 이후에는 내가 너무 못나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재섭이만 빼면 다른 아이들의 노래는 훌륭했으니까.. 그렇게 즐겁고 단란한 노래자랑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에 들어오니 정말 아득했다. 최고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아득한 분위기에서 카드놀이와 고스톱을 했다(?). 나는 포커와 원카드, 블랙잭에는 능했으나 고스톱을 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대훈이와 태기에게 고스톱을 배웠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포커는 운에 맡겨야 하지만 고스톱은 어느 타이밍에 쪽을 노릴 것인가? 점수를 계산하여 피를 먹는 센스, 싸지는 않을까? 등을 계산하여 자신의 패를 최대한 이용하는 두뇌게임이다. 와.. 심리전이 보통이 아니었다. 물론 돈을 걸지는 않았지만(꿀밤으로∼∼).... 그렇게 즐거운 놀이를 하고난 다음 새벽 2시에 잠에 들었다.

드디어 3일째, 신기하게도 숙소 밖으로 나오면 움직이기 싫고, 짜증병이 도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너무 x375 귀찮아서 대충 후드티를 머리에 덮어쓰고 버스에 탔다. 3째 날에는 오전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역시 우리나라 최고의 다우지였다. 그래서 지루한 오전 일정(산, 동산, 고원 가기)는 모두 취소했고, 매직쇼를 보러 갔다. 매직쇼는 서커스였다. 서커스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 정말 마상쇼와는 비교도 안되는 스케일과 실력들이었다. 와∼∼ 어찌나 비교가 되든지.. 그렇게 퐌타스틱하고 나이쓰한 쇼가 끝나고 또 바로 난타를 보러 갔다. 제법 제주 시내로 들어갔다. 제주 도심가는 뭐.. 그냥 제주란 걸 잊게 할 만큼 그냥 단순했다. 그래서 모전동에도 보던 간판을 지나서 얼마 더 갔을까 문경에는 없는 새로운 건물에 버스는 섰고 우리는 그 건물로 들어갔다. 현수막이 멋지게 걸려있었다. “난타 제주 공연!!”. 나는 과연 어떤 공연일까를 생각하며 좌석에 앉았다. 내 옆에는 하림이와 태기가 앉았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 처음에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했으나 난타의 이름처럼 분위기를 急반전 시킴과 동시에 주방장 옷으로 갈아입고, 즐겁게 드럼통을 두드렸다. 어찌나 신나던지... 그 다음 좋았던 건 관객과 공연을 함께 한다는 점이었다. 관객을 무대로 불러서 함께 도마를 두드리기도 하고, 자리에 앉아서 함께 리듬을 맞추기도 하였다. 무대에 올라간 분은 바로 “권 대성”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마치 리허설을 한 사람처럼 익살스런 표정도 잘 지으시고 연기력도 A- 수준이셨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난타를 치시는 홍일점이신 이 다희 누나(?)였다. 나도 이름을 몰랐지만 권대성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다.(선생님도 반하신 모양이다. 하! 하!) 그렇게 즐거운 1시간 반이 흐르고 우리는 공연의 내용은 어디로 가버리고 홍일점 분의 이야기만 했다. 와.. 근데 진짜 예뻤는데.. 하하하.. 그렇게 멍~~ 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4반으로 원정 고스톱을 했다. 크크크 진짜 숙소에서 할 것은 도박 밖에 없었다. 그렇게 3시 까지 논 다음에 다음 날의 기상 시간 (5시;;)를 맞출 수 있을 까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진짜로 일어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방 아이들은 모두 아침을 먹지 못했다. 7시 까지 잠을 자기위해서.... 그렇게 깨름직한 잠을 자고 난 후 미칠 듯이 무거운 지방

60Kg를 10Kg도 안되는 근육으로 끌고 다니기가 이렇게 힘들 줄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뚜벅! 뚜벅! 뚜벅! 탁! 탁!(비행기에 올라탔다. 하.하..;; ) 내 좌석 옆에는 대훈이가 앉았다. 물론 즐겁게 갔다. 내가 창가 쪽이어서 대훈이에게 자리를 양호한 후에서 비행기를 타는데 아이들이 이륙할 때 그 약 30초 간의 무중력 상태 아.. 생각해도 쪽 팔리네... 아이들은 미칠 듯이 소리 질렀는데. 아.. 진짜...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다.(물론 소리를 지르지 않은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게 드디어 재고가 들어왔는데 그렇게 10초 만에 매진되는 쪽과 창피을 원망하며 빨리 착륙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쉬이이익! 치익! 탁! 탁! 탁! 덜썩!(비행기 착륙 후 하차, 버스로 다시 올라 탐..내용이 없어서..;) 버스에 그렇게 올라탔고 버스는 그렇게 출발했다. 오늘 도박에 심취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에 버스 앞자리로 옮겨서(뒷자리는 시끄러워 죽을 지경) 잠을 자는 데 벌써 3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TV에서는 광우병 파동에 대한 고시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다시 잠드는 데 TV도 도와주다니.... 그렇게 잠시 생각을 하려고 눈을 감았다 떴는데 2시간이 지나서 도착한 것이다.. 와.. 도대체 얼만큼 잠 왔던 거야? 그렇게 남부 정류장에 내려서 집에 들어갔다. 그런 후 이번 수학여행으로 얻은 것을 생각해봤는데 음.. 고스톱... 음.. 그 다음... 아.. 없구나.. 있다고 하면 멋진 경치와 세상을 보는 안목 정도? 내가 이번 수학여행 때는 너무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은 것 같았다. 나무뿌리나 캐먹는 애한테 진수성찬을 차려주니 못 먹고 나무뿌리나 캐먹으러 가는 격이지 뭐.. 이번 수학여행의 전체적인 기분은 멍~~ 이다.. 너무 중간고사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아..진짜 25만원 중 10만원도 못 건진 느낌이다. 다음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는 최대한 쪽팔리는 짓을 많이 해야겠다. NO PAIN NO GAIN 이니까 말이다.

by 수도산 | 2008/06/01 19:19 | 무슨 생각하나 | 트랙백 | 덧글(0)

한반도 운하 절대 반대

 

  
“4대강 정비계획 실체는 대운하 추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5232333035&code=940202

 

ㆍ건설기술硏 책임연구원 김이태 박사 ‘양심선언’
ㆍ“반대논리 대응책 강요… 머리 짜내도 대안없어”

국책 연구기관의 책임연구원이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정부의 ‘4대강 정비계획’의 실체는 운하계획”이라고 폭로했다. 또 정부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든 뒤 연구원들에게 대운하 반대논리에 대한 대응 논리를 내놓으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첨단환경연구실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는 김이태 박사(46)는 23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올린 ‘대운하 참여하는 연구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지식경제부 산하 국책 연구기관이다.

그는 “한반도 물길잇기 및 4대강 정비계획의 실체는 운하계획”이라며 “국토해양부 TF팀에서 매일매일 반대논리에 대한 정답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반대논리를 뒤집을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기본적인 목차는 변하는데 (대운하의) 내용은 바뀌지 않는다”면서 “(대운하 건설논리는) 국토해양부 장관이나 그 윗사람의 철학이지 공무원의 철학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대로 된 전문가들이라면 운하 건설로 인한 대재앙은 상식적으로 명확하게 예측이 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 박사는 “국토의 대재앙을 막기 위해 글을 올렸다”면서 “모든 불이익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다음에 올린 글에서 “이 얘기를 올리는 것 자체가 ‘보안각서’ 위반이기 때문에 많은 불이익과 법적 조치, 국가 연구개발사업 자격이 박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정정당당하다면 과천의 수자원공사 수도권사무실에 비밀집단을 꾸밀 게 아니라 당당히 국토해양부에 정식적인 조직을 두고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 박사는 억지로라도 ‘반대논리’에 대한 재반대논리를 만들어야 하는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의 괴로움을 함께 토로했다. 김 박사는 “수많은 전문가가 10년을 연구했다는 ‘실체’는 하나도 없다”며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답변을 주지 못하다 보니 ‘능력 부족’ ‘성의 없음’이라는 질책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기회가 되면 촛불집회에 나가 한마디 하고 싶다”며 “내 자식 보기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서 글을 올렸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6시15분쯤 게시판에 오른 김 박사의 글은 4시간여 만에 조회수가 2만건을 넘었고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이에 대해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은 연구원의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국토부는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라도 반대논리에 대한 정답을 내놓으라고 강요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또 “국토부에서는 지난 19일 브리핑을 통해 운하준비단에서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분석을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면서 “밀실에서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도 근거 없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홍진수·강병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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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도산 | 2008/05/24 09:4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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